올 연말은 준비하고 해결해야할 일들이 태산처럼 내앞에 우뚝 서있는데도 이상하리 만치 많은 상념에 잠기기도 하고 지난 추억들을 곱씹는 시간을 자꾸 갖게 되는 것이 사춘기가 다시 오려나 보다.
어제는 아내와 모처럼 연극관람을 포함한 대학로 패키지데이트를 아내의 컨디션난조와 일정상 여의치 않아 중학생인 큰딸과 둘만의 데이트를 하며 연극을 보고 라이브카페에서 파스타를 먹으며 마치 연인같은 시간을 보냈는데 예상치 않은 이벤트였지만 부녀간의 정을 돈독히 하며 많은 대화를 할 수 있었던 유쾌한 시간이었다.
누구에게나 자신의 인생을 반추할 수 있는 추억의 장소가 여럿 있을 터인데 나역시 대학로는 희비가 엇갈리고 즐거움과 애잔함이 공존하는 추억의 장소이자 지금도 어쩌다 가보는 현재진행형의 공간이다.
내 기억이 틀리지 않다면 대학로는 80년대 초에 형성되기 시작하여 내 군복무시절의 절정인 80년대 중반에 우리사회에 청춘문화의 아이콘같은 장소로 떠오르며 그동안의 신촌과 종로의 먹고 마시는 소비적인 문화에서 하나의 대안같이 문화코드가 접목되어진 서양의 우드스탁이나 히피문화같이 좀 폼나게 정서적인 갈증도 충족하고 젊은이들의 해방구이자 문화를 융합해보자는 거대한 사명을 갖고서 이 땅에 조성되어진 것 같은데 어제 찬찬히 주변을 살피며 느꼈던 감정은 절반의 성공이란 생각을 갖게 한다.
상업적인 쓰나미가 이곳도 예외없이 휩쓸고 있지만 그래도 많은 이들에게 연극과 뮤지컬을 볼 수있는 공간을 제공하며 연인들의 추억만들기와 갈곳없이 방황하는 싱글들의 영혼과 정서를 위로해주니 이만한 곳도 흔치 않으리라.
어제 내가 본 연극은 <너와 함께라면>이라는 일본 작가가 쓴 작품이었는데 한마디로 대박이었다.
영화매니아인 나로썬 연극은 잘 안보게 되고 가끔 볼때마다 그저 현장감이 신기하고 대중문화적인 편식을 탈피한 색다른 문화체험 만으로도 충분한 가치가 있었는데 어제는 이 작은 연극무대에서 많은 관객들을 쥐락펴락하며 웃음의 도가니에 빠트려 거의 두시간을 끌고 가는데 배우들의 열정과 파워풀한 연기에 웃음이나 감동 그 자체로도 탄성을 자아냈지만 그 보다 내겐 프로들의 세계를 엿본듯한 기분이 들었다. 나를 심취하게 만드는 영화나 연극을 보면서 늘 생각하는 거지만 좋은 작품들은 건축으로 따지면 좋은 설계도를 갖고서 집을 만드는 것과 같은 이치라는 생각이다. 개연성이 있고 밀도있는 스토리텔링이 있어야 대중들에게 어필한다는 것은 만고불변의 법칙이다. 그 다음이 배우들의 혼신을 다한 열연이리라. 자신이 사회에 나와서 생계에 도움을 받으며 맡은 역할이 있으면 이들처럼 해야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은 인생을 살고 있노라고 어디가서 자신있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아무튼 연극이란 장르는 자신의 꿈과 소신이 없으면 오래하기 힘든 일임에는 틀림없다.
초창기의 대학로는 '마로니에 공원'과 '샘터파랑새 극장'이 상징적인 곳이 었는데 이젠 명맥만 유지하고 무수히 많은 소극장들과 카페,주점들의 향연과 불꽃티는 경쟁이 대학로의 주류문화가 된 듯한 인상을 주기도 한다.
내가 보았던 연극의 관객뿐 아니라 대학로거리의 대부분은 여성들의 천국일 정도로 여자들의 세상이다. 그런데 유독 중년남성들 수십명이 줄서있는 진풍경을 보면서 뭔일인가 궁금해 하는 찰나에 어떤 아줌마들이 하는말이 들려서 호기심이 금방 풀렸다.
그곳이 중년남성들이 청년시절에 진보적 성향의 국문학자이자 여성탐구에 모든 생애를 바치고 계신 마광수교수의 원작인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 라는 작품을 하는 소극장이었던 것이다. 요즘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바로 그 작품.
동시대의 같은 중년의 남성으로서 그 광경에 웬지 내마음이 공허해짐을 느낀다. 우리가 청소년시기에 야한여자를 보고싶은 마음에 시내의 개봉관은 가지도 못하고 변두리 동시상영 영화관을 찾아야만 했던 그때 그시절의 광경이 30여년 만에 재현한 듯 해서 인것 같다.
나에게 대학로의 의미는 순수했던 청소년기에 만난지 몇달만에 이별했던 첫사랑을 몇년만에 군대휴가 나와서 만났던 유토피아였던 곳이자 내 누이가 평생 일군 재산을 소진하게 만든 괴물같은 곳이기도 하다. 이런 것이 인생이라면 정말 얄궂은 것이 우리네 인생이다.
어휴~ 추워!!! 도대체 아트원씨어터가 어디 있는겨? 연극 한편 보려다 돌아가시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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