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사는 이야기

눈(雪)에 대한 나의 두 가지 시선

놀이수호천사 2024. 11. 30. 17:22

아이는 부모에게 평생할 효도를 세 살이전에 다 한다는 말이 있다.

짧은 시간이지만 그시간동안 부모에게 무엇과도 견줄수 없는 기쁨과 즐거움을 선사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세상에 어떤 것들은 기간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짧은 순간이라도 내마음속에 각인되는 임팩트가 중요한 경우도 종종 있다.

 

내겐 눈에 대한 분명한 두 개의 표상이 있는데 하나는 서정적인 미장센이고 다른 하나는 전투적인 삶의 현장이다.

현재는 후자에  많은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는 삶을 살고있다.

 

눈이 축복이자 하늘에서 내리는 꽃가루처럼 아름답고 신비스런 감정이 충만했던 기억은 10대후반 대입수험생이라는 불안정한 시기에 우연히 알게된 첫이성친구와 대입시험직후에 만나 종로일대를 돌아다니며 판타지같은 경험을 할 때 내렸던 눈이 순수한 마음과 시선과 어울러 환상적이었던 어렴풋한 기억의 한 조각이 있다.

그건 마치 영아기에 평생효도를 다 한 것처럼 짧았던 하루저녁시간동안 눈의 낭만적역할을 내게 거의 다 한 것 같다. 

 

그 이후로 청년이 되어선 군대생활을 공군비행장에서 하게되어 세 번의 겨울을 보내며 눈이오는 날엔 비행출격에 차질이 없도록 하기위해 온몸을 바쳐 여의도면적만큼의 눈을 치우고 나니 제대하라는 국가의 부름을 받게 된다.

 

그리고 현재 무슨 운명의 장난인지 모르겠지만 교육시설을 산기슭 친환경적인 전원주택단지에 조성하여  장년이후 20년넘게 아이들과 평화롭게 즐겁게 지내기 위해선 겨울에 눈이 오는 날 제설작업은 나의 숙명이 된듯하다.

셔틀버스의 안전한 운행을 위해선 비탈진 단지내 진입로 확보를 위해 200여미터정도의 눈길에 내 손길이 닿아야만 하는 형국이다.

 

그래도 최근에 있었던 감동의 에피소드는 눈이 오면 가끔 좋은 기억으로 생각이 날 것 같다.

몇일전 역대급강설로 국가적재난상황이 벌어졌을 때 특히 내일터가 있는 용인시는 이틀간 80센치이상의 적설량이라는 전무후무한 상황이 벌어졌다.

하늘이 무심하고 아연실색할 상황이지만 일터의 원만한 운영을 위해선 무엇보다 눈을 치우는 것이 최우선이기에 눈과의 사투를 삼일간 벌이며 다시 정상운행을 하게 되니 마치 전쟁터에서 적의 공격으로부터 치열하게 방어하여 기지를 사수한 것 같은 성취감은 있었다.

 

그런 와중에 한 선생님이 나와 기사선생님 두 분에게 제설작업중에 양말이 젖으면 갈아신으라고 새양말을 준비해서 선물로 주는데 힘든 제설의 기억은 눈녹듯이 사라지고 세심한 마음씀씀이에 세남자의 눈가에 이슬이 맺힐것 같은 감동이 밀려왔다.

세상엔 이런 공감능력과 역지사지의 마음을 지닌채 사는 사람들이 꽤 있기는 할텐데 내주변에도 이런 사람이 있는것에 훈훈한 기분이 든다.

 

작은 선물의 힘이 이렇게 큰 감동을 주는 것을 생각해보면 인간의 모든 행위에는 적절한 타이밍이 중요하다는 것을 새삼 실감한다.

 

어쩌면 힘든 역경속에서 배울 것은 더 많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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