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사는 이야기

종합건강검진을 받은 소회

놀이수호천사 2024. 11. 19. 13:55

두어달전 백세를 바라보시는 노모의 생신잔치를 분위기좋은 한정식집에서 마치고 2차로 전망좋은 까페에서 즐거운시간을 보낸후에 뿌듯한 마음을 안고서 집으로 돌아왔다.

 

평소에 형과함께 생활하는 어머니하고는 이틀이 멀다하고 통화를 하는 편인데 그날 이후로 무슨연유인지 예전과 다르게 통화할때마다 건강검진을 받았냐고 내게 물어오시는 것이 낯설었지만 가끔씩 건진은 받는편이라고 어머니를 안심시키는 답변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최근에 받은적 있냐고 되물으시면서  걱정스런 뉘앙스로 말씀을 하시길래 조만간 받을 거라는 말로 다시 안심을 시키고서는 갑자기 건진을 권유하는 이유를 어머니에게 물어보았지만 명쾌한 답변을 듣기는 어려웠다.

 

전혀 짐작이 가지않는 것은 아니지만 평소에는 잘먹고 항상 건강관리에 신경쓰라는 여느 부모님들이 자식에게 하는 정도의 말씀을 하셨는데 이정도로 건진에 집착하시는 것이 처음에는 생신날 나의 안색이 안좋아 보였나 아니면 어디서 사주같은걸 봤는데 안좋게 나왔나 정도로 생각하며 직접 여쭈어보기도 하면서 갑자기 왜 건진을 받았냐고 통화할 때 마다 말씀을 하시는지 물어봐도 어머니가 청력이 안좋은 편이라 상대방의 말은 잘 안들릴때가 있어 본인말 위주로 하시는 편인데 어머니걱정의 정확한지점을 알수가 없어서 답답한 마음이 풀리지 않았다.

 

내가 들을수 있었던 어머니의 표면상의 이유는 그동안 내가 사업하느라 오만가지를 신경쓰고 책임질일도 많은 사람이 30년넘게 현가족과 원가족에게 너무 신경도 많이 써서 신경계나 건강에 이상이 생겼을수도 있으니 바로 건진을 받으라는 말씀이었는데, 평소에는 항상 건강을 염려해주시며 잘 먹고 다른 가족들에게 이젠 너무 신경쓰지말고 일도 쉬엄쉬엄하라는 말씀을 주로 해주셨는데 건진이 통화의 화두가 된 것이 다소 의외로 느껴졌다.

 

 그동안 업무와 관련해서 매년 간이건진이나 50세이후로는 2,3년정도 주기로 내시경검사도 하며 나름 건강검진에 신경쓰고, 원래 계획도 올해가을쯤에 생애처음으로  딸이 다니는 회사의 가족복지혜택을 활용해 풀코스로 건강검진을 수검하려고 했는데 어머니의 걱정으로 인해 그시점을 최대한 앞당겨서 받으려고 딸에게 예약여부를 확인하니 바뻐서 시간될 때 한다는 반응에 살짝 서운한 감정이 드는건 어쩔수 없었던 것 같다.

 

부모의 자식사랑과 염려는 인류의 다른 어떤형태의 그것 보다도 절대 불가역적이고 넘사벽이라는 생각이 든다.

구십중반의 노모가 갑자기 염려가되는 자식의 건강때문에 이렇게 신경을 쓰시고 독려를 하시니말이다.

 

평소에 본인의 건강은 자식에게 짐이 되지 않도록 항상 신경쓰고 있으니 염려하지 말라고 하시고 최근들어선 자식들 모두 살만하게끔 해달라고 부처님께 매일 기원하고 있는데 임무를 마친거 같으면 아버지만나러 소천하신다는 말씀을 자주 하신다.     덧붙여 당신의 소천하는 시기도 본인은 알고 있다는 표현을 하시며 위풍당당하신 면모를 잃지않고 계신다.

 

어머니의 염려에 힘입어 몇일전 강남의 유명한 건진센터에서 검진을 받게되었다.

주말 이른 아침시간이었음에도 많은 사람이 먼저와서 대기하고 있는거에 한 번 놀랬고, 공장자동화시스템에서 다양한 공정을 거쳐서 완제품을 생산하듯이 다양한 항목의 검사를 여러직원의 안내로 체계적으로 수검하고서 건진을 완료하게되는 것이 조금은 신기했다.   

중간중간 대기시간에 주위를 살펴보며 드는 생각은 나보다 훨씬 젊은나이부터 많은 사람들이 건강을 위해  시간과 금전적투자를 하면서 현생을 살아가는구나 하는 것과  밀도높은 수검자들을 보면서 나역시 사업자로서 센터의 사업주는 초기투자를 어느정도했을 것 같고 월수익은 어느정도 될거 같다는  생각을 무슨 기업컨설팅자료로 누가 의뢰한 것도 아닌데 몇차례나 조율해나가며 디테일하게 금액산정을 하면서 대기시간을 보냈던 내가 조금 웃기는 것 같기도 하다.

 

지금시점에 전체검진결과를 통보받은건 아니지만 바로 결과를 알수 있는 항목에서 건강적신호의 부위가 발견되어 진료의사가 앞으론 좀 더 세심한 섭식을 주문하였고 이의 실천을 위해선 그동안의 생활패턴에도 변화가 불가피한 시점에 온 것 같다.

 

인생의 낭만이자 사유의 시간이었던 혼술이나 커피타임은 일상이 아니라 나에게 주는 선물같이 앞으론 이벤트성으로 해야 할 것 같고 지인들과의 약속도 내가 주도하는 일은 거의 없을 것 같은 생각이 뇌리를 스치며 살짝 짠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대부분의 기계나 사물들도 시간이 지나면 수명이 다하거나 소모품들을 교체해가면서 본연의 기능을 수행하는데 이 나이 먹도록 육신이 완벽한 것도 아이로니이지만 막상 그동안의 섭생을 조절하지 않으면 심각한 국면을 맞이할 수 있다니 유쾌한 기분은 아니다.

 

내가 20여년전에 가족중에 처음으로 아버지를 하늘나라로 떠나 보내고서 그시기부터 인생의 좌우명같이 마음속에 두고서 살고있는 말은 `세상의 모든 일은 나에게도 올 수 있다.' 인데 새삼 연식이 점점 더 되가며 그말이 실감날때가 많아지는것은 어쩔수가 없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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