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지천명의 나이가 되었지만 아직도 세상살이가 20대 감성 그대로 요동칠때가 있다.
그럴 땐 일상이 헝클어져 잡생각이 밀려오는데 정답을 찾기 힘든 상황에 놓이면 혼술하는 습관이 생겨 이젠 그런 시간을 즐기는 단계에 접어 들었다.
아내는 이런 나를 보면서 뭉퉁그려 몽상가라고 놀리기도 하지만 사실 이 세상과 인간에 대한 나의 심오한 해석과 가치추구를 모르고 하는 소리라고 스스로 위로 할 때 가 있다.
많은 철학자들이 인간군상을 다양한 방식으로 분류하고 어느 인도영화에선 이 세상에 반은 좋은사람 반은 나쁜사람이니 조심하며 이 세상을 살아가라고 어머니가 지적장애가 있는 아들에게 말하는 장면이 나오기도 하는데 나 역시 세상살이가 시니컬해지면 다양한 분류체계로 인간군상을 분류하며 내 삶의 고뇌의 무게를 조금 내려 놓으려 상상놀이를 할 때가 있다.
그 동안 다양한 분류를 해 보았지만 최근에 내 일터 주변의 쓰레기를 주우며 들었던 생각은 이 세상엔 두 부류의 인간이 존재하는 것 같다.
'쓰레기를 버리는 인간과 쓰레기를 줍는 인간' 풀어쓰자면 지구별을 아프게 하는 인간과 그 지구별을 치유하려고 애쓰는 인간, 평생을 남에게 민폐를 주는 인간과 타인의 행복을 보면서 자신의 행복을 슬쩍 누리는 인간.
모든 인간이 스스로 선택해서 이 세상살이가 시작된 건 아니지만 그래도 이 세상을 살아가는 이유를 만들어 가거나 찾아가는 여정의 총합이 우리네 인생이 아닐까 생각을 해 본다.
어느 작가는 시니컬하게도 인간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시한부인생이네 사형수네 하면서 서글프게 만들기도 하지만 인간이면 누구나 피할 수 없는 종말이 있다면 장기기증하는 사형수의 삶도 외롭지만은 않은 삶이지 않을까.
내가 사는 이유중의 하나는 구순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굴하지 않고 멋지게 이 세상에 존재감을 보여주고 계시는 어머니에 대한 의리와 보은이다.
또 하나를 들라면 내 일터에서 나에 대한 호기심과 칭찬을 아낌없이 표현해 주는 우리 아이들.
내가 살면서 요즘 내가 받는 칭찬과 사랑의 90프로는 네다섯살 꼬맹이들로 부터다.
인간에 대한 사랑과 관심은 상호작용이라는 것을 이 아이들로 부터 배운다.
세상은 사막이고 인간은 각자의 섬에서 살고 있는 외로운 존재일지 모르지만 그래도 가치있고 의미있는 일을 하면 가치있고 의미있는 인간으로 이 세상을 왔다 가는 것이 라고 스스로를 세뇌시키며 살아 간다.
그것이 쉬운 일은 아닐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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