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사는 이야기

나이 듦에 대하여

놀이수호천사 2024. 8. 16. 16:42

어느덧 외모의평준화 나이대에 접어드니 다소 아쉬움도 있지만 한편으론 내면에 집중할 수 있고 또한, 프로이드가  주창한 삶의 원천이자 활력이라는  리비도로 부터도 많이 자유로워진 것 같아 세상을 사유하기엔 딱 좋은 나이대가 된 것 같다.

 

젊어선 진취적이고 멀티플한 삶의 궤적을 만들어 가는 사람들에게 관심도 가고 흥미가 생겨서 내 삶에도 동기부여가 되었는데, 이젠 자기관리와 역할을 균형있게 해나가며 삶을 아름답게 가꿔나가는 시니어에게 눈길이 간다.

그래서인지 언제부턴가 책이든 인생멘토강연이든 나보다 인생의 연륜이 더 쌓인 사람의 스토리가 감정이입이 더 잘되어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빈도가 훨씬 더 높은 것 같다 .

 

한동안은 고인이 되신 장영희교수의 불굴의 의지와 삶에 임하는 긍정적인 마인드에 숙연해지기도 하고 자신의삶에 용기를  갖고 무소의 뿔처럼 걸어가라는 메시지나, 정신과의사인 김혜남작가의 사랑과 인간의 이해에 대한 인문학적 묘사에 매료가 되었는데, 언제부턴가는  백살의 철학자로 알려진  김형석교수의 자기관리와 삶에 임하는 자세나 가치관이 나에게 좋은자극이 되어 삶에 영감을 주거나 세계관의 확장에도 도움을 준다.

 

이런 분들의 삶의 궤적이 나에겐 워너비같은 존재다.

 

자기분야에서 전문성과 진정성으로 과업을 잘 이루었고,한편으론 많은 이들의 삶의 애환에 대한 위로나 방향성제시로 영감을 주거나 성찰할 수 있는 기회를 주어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주는 이런 분들이 나에겐 나이 듦의 하나의 모델링이 되어준다고  생각한다.

 

아마도 지인들 모임을 갖다보면 분위기나 화제에 따라서 자신이나 혹은 다른 사람에 의해서 `다시 태어나도 지금의 배우자와 결혼할건지' , `돌아갈수 있다면 언제적 나이로 가고 싶은지' 같은  바로 결정하기 싶지않은 논제에 대해서 자신의 의견을 말해야 되는 순간이 온적이 있었거나, 앞으로 올 기회가 있을 것이다.

어찌보면 실현가능하거나 자신의 노력에 따라서 이루어낼수도 없는 시덥잖은 질문같지만 생각하기에 따라선 현재 자신의 행복지수나 성격을 노출하는 심리.성격진단의 검사항목같은 내용일 수도 있다.

 

분위기가 좋은 부부모임자리에서 첫 번째 같은 질문이 나오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나의 경우는 두가지 답변이 항상 장착되어 있다.

하나는 `꼭 다시 태어나야 돼, 나는 안 태어나고 싶은데' 하며 다소 시니컬하면서 센스있게 말하거나, 비장의 두 번째 카드는 '한번 더 현재 배우자를 취하는 건 탐욕이야, 나에겐 과분하고 완벽한 배우자라 다른 사람에게도 기회가 주어지는 것이   공정하다고 늘 생각하고 있어.' 라고 유머러스하게 답변하는데, 두 가지 다 지금까지는 모임의 분위기에 일조하는 멘트였던 것 같다.

 

하지만 두 번째 질문에 대한 답변은 언제부턴가 한 가지로 고정되어있다.

 

`지금 현재가 좋아요. 돌아가고 싶지 않아요.'

 

물론 진지하고 솔직한 답변이 재미없을 것 같으면, `결혼식 전날?' 같은 멘트로 드립을 한 번 치기도 하지만 다시 진정성있게 솔직한 답변으로 정정한다.

 

첫 번째 질문은 재미삼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두 번째 질문같은 경우는 제법 진지하게 받아드리게 되고, 순간 자신의 삶을 반추해보거나, 평소 삶에 대한 자신의 소신을 타인에게 밝히게 되는 순간이기도 하다.

최근 모임에서도 이런 논제가 나왔는데, 나도 지금 여기가 좋다고 소신발언을 했지만 다수가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었고, 20대로 돌아가고 싶다는 한 중년여성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왜들 그런거냐고 되물어 오기도 하였다.

젋은 친구들은 특히 더 이해하기 쉽지 않겠지만, 의외로 중년이나 노년의 삶의 이정표를 지나가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현재의 상황에 머물러 있기를 바라지 젊은시절로 다시 돌아가고 싶다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다.

 

그런 이유가 사람마다 다소 개인차는 있겠지만 대부분 치열하게 살면서 경쟁하고 또한 누군가에게 평가받고, 지속적으로 무언가를 도모해야 하는 그런 타이트한 생활을  또 한 번 하고 싶지 않은 부분이 크지 않을까 생각해 본 적이 있다.

한편으론 인생은 정답이 없다는 말이 있지만, 나이가 인생후반전에 들어서면 젊은친구들이 항상 새로운 문제에 맞딱드리면서 고심하고 뫼비우스 띠같이 해결책을 찾는데 어려움을 느낄 때, 시니어들은 인생전반전의 시행착오들이 기출문제를 풀어 본 수험생같이 좀 더 편하게  당면한 문제들을 풀어가는 어드밴티지는 주어지는 것 같다.

 

물론 기출문제가 아닌 처음보는 킬러문항을 만나게 되어 당황스런 경우가 생기는 것이 인생이기도 하지만 그래도 전반적으로 마음의 여유를 갖고서 인생의 시험들을 풀어나갈수 있는 혜안이 생기는 시기이기는 하다.

 

흔히 사람들이 하는 말중에 `물좋고 정자좋은 곳은 없다.' 라는 말이 있다.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현재의 환경에 만족하며 이상과 현실의 간극은 조율해나가거나, 좁혀가는 것이 우리네 삶이지 처음부터 완벽하고 내게 아주 유리한 상황이 쉽게 주어지는 경우는 없다. 라는 의미로 해석하는데, 아마도 사람에 따라선 부정적인 의미에 더 방점을 찍을 수도 있는 표현이기도 하다.

 

어찌보면 나이가 든다는 것도 이 말의 범주에 해당되는 것 같다. 

노령화된다는 것은 신체적기능이나 자조능력의 점진적  상실을 의미하면서, 다른 한편으론 감정적 평온함으로, 주체적이고 소박한 라이프스타일을 추구하며 안정적인 일상을 누릴수 있는 여건에는 훨씬 유리하다.

 

나이가 들어갈 수록 매사에 열정은 점점 식어지고 그로인한 결손은 연륜으로 커버하거나, 내적욕구를 줄여나가는 방법으로 균형을 잡아주며 살아간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건 옳고 그름의 대상이 아니라 환경에 적응하며 생존해나가려는 진화론적 관점으로 이해되는 부분인 것 같다.

 

어떨 때는 지금의 사회적나이가 정서적나이와의 편차가 심하게 느껴져 불편감을 갖을 때도 있지만, 그래도 오롯이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주체적으로 할 수 있고, 세상을 조망하는 스펙트럼이 넓어진 것은 나이 듦의 보상같다.

 

백년이상을 살아내시고 지금도 현역으로 사회활동을 하고 계신 김형석철학자가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다.

`내가 백년을 살아보니 나의 전성기는 육십 세 부터 칠십오 세 인 것 같다.'

 

나는 무슨 실버계의 동기부여, 희망고문의 전도사인 것 처럼 비슷한 또래의 모임에서 가끔 김형석철학자의 이 말을 설파할 때가 있는데 어쩌면  그건 내게 삶의 의지와 목적을 잘 부여잡으며 나이 듦에 대한 긍정적인 수용과 또 다른 세계로 들어가는 문을 위한 것 같기도 하다.